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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한겨레 - 국악 세계화의 지름길

등록일 : 2015-05-20

[2015년 5월 15일 ㅣ 한겨레 김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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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악기 음원샘플 데이터로 만들어 ‘건반 연주’
서양악기와 협연 수월한 북한 개량 국악기 교류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 싱어송라이팅 댄스 뮤지션 샤키라. 자신의 노래 ‘디드 잇 어게인’(Did it again)에서 한국 전통춤 ‘삼고무’ 영상과 소리를 넣었다. 위키피디아.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 싱어송라이팅 댄스 뮤지션 샤키라. 자신의 노래 ‘디드 잇 어게인’(Did it again)에서 한국 전통춤 ‘삼고무’ 영상과 소리를 넣었다. 위키피디아.

“문화는 시공간에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는 집단과 사회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구현한다. 생태 다양성이 자연에 필요한 것처럼 교류·혁신·창조성의 근원으로서 문화 다양성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다양성은 인류의 공동 유산이며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혜택으로서 인식하고 확인해야 한다“

-2001년 11월 2일 프랑스 파리 제 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선언 제1조

샤키라의 노래  ‘디드 잇 어게인’(Did it again) 유튜브 공식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igcsNG4aruA
샤키라의 노래 ‘디드 잇 어게인’(Did it again) 유튜브 공식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igcsNG4aruA

오는 5월21일은 유엔에서 선포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입니다. 점점 다양해지는 세계 속에서 다원적이며, 역동적인 문화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조화로운 상호 작용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는 협약의 다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민과 한국 거주 외국인들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조성하자는 취지로 2007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 따라 5월 20일을 ‘세계인의 날’로 제정하였죠.

문화의 한 부분인 음악도 여러 음악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교류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문화와 음악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절대적인 문화와 음악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다양한 문화와 음악들을 교류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인터넷을 가능케 한 컴퓨터입니다. 그 컴퓨터를 가능케 한 수학체계 또한 절대적인 체계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문화와 음악이 없는 것처럼 컴퓨터를 가능케 한 수학, 그 수학의 체계 또한 절대적인 것은 없는 것이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컴퓨터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진법 아이디어에 기반한 것입니다. 0과 1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의 작동 원리인 이진법 아이디어는 어떠한 단어, 문자, 문장도 자연수로 대응시킬 수 있다는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의 ‘수 대응이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고, ‘수 대응이론’은 괴델 자신의 ‘불완전성의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이론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창안한 아인슈타인의 절친이기도 했던 괴델은 불완전성의 정리를 통해 수학체계에는 ‘0은 수이다’처럼 증명할 수 없는 공리가 존재하며, 이러한 공리를 쓰는 수학체계는 그 체계가 모순이 없는 한 그 자체 내의 공리와 규칙만으론 그 체계의 일관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죠.

불완전성의 정리의 발상점이 된 크레타인의 역설을 보면 ‘크레타인이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했다’라는 문장에서 이 크레타인의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다”라고 한 말이 참이라면, 이 말을 한 크레타인도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이 크레타인의 말은 참이 아니게 됩니다. 또 이 크레타인의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한 말이 참이 아니라면,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는 이 크레타인의 말은 참이게 됩니다.

괴델은 이러한 크레타인의 역설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글자와 단어, 문장들을 수치부호(numerical code)로 표현해 한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산술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수 대응 이론’ 나타냈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수 대응 이론’으로 나타내어 불완전성의 정리를 완성한 것이죠.

 

“(이 괄호 안의 진술은 증명할 수 없다)
만약에 위 문장이 옳다면, 그것은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되므로, 그 체계는 완전한 것일 수 없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그것은 거짓이지만 증명할 수 있는 명제가 되므로, 그 체계는 모순이 된다”
-‘수학의 세계’ 박세희. 서울대학교출판부. 인용

다시 정리하자면 “모순이 없는 수학체계는 증명할 수 없는 공리를 가지고 있어 완전할 수 없다. 또 모든 공리가 수학체계 자기 내부에서 증명되는 완전성을 이루려고 하면 모순이 생긴다. 즉 어떠한 수학체계도 절대적인 진리체계가 될 수 없다. 평행선은 아무리 연장하여도 만나지 않는다는 공리를 가진 유클리드 기하학 체계를, 평면상의 두 직선은 모두 만난다는 공리를 가진 비유클리드 기하학 체계가 보완해 냈듯, 하나의 수학체계는 다른 수학체계에 의해 보완되고 또 그 수학체계는 또 다른 수학체계에 의해 보완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엄밀한 기호논리 체계라는 수학체계도 이렇게 절대적인 것이 아닐진대, 그러한 수학체계의 이론을 탄생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 그러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문화, 그 문화 속의 음악이 절대성을 가지지 않고 다양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어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실제로 컴퓨터는 유튜브 등을 통해 여러 다양한 문화의 음악들을 듣고 또 케이팝을 다시 다른 문화에 알리는 교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컴퓨터는 우리 음악문화를 세계에 알릴 또 다른 좋은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전통 악기 음원들을 샘플 데이터로 만들어 세계 각국에서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도나 일본, 아랍, 아프리카 등의 악기 소리들은 이미 샘플로 데이터화 된 경우가 많아 세계 곳곳의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노래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해금, 대금, 가야금 등 국악기 소리를 샘플로 만드는 데이터화 작업을 통해, 전통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릴 길을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전통악기 소리 알리기 시도는 예전부터 조금씩 이뤄져 왔습니다. ‘전통국악기 샘플데이터’ ‘국악장단 디지털콘텐츠’ 사업 등을 통해 몇몇 개의 국악음원 샘플을 개발했고, 한양대학교에서 ‘국악VSTi’(국악 가상악기, Virtual Studio Technology Instrument)라는 가상악기 프로그램을, 라임시스템에서 한국형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 ‘지음(知音)’을 개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문제로 시장에 나오지 못하거나 나왔어도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국악음원샘플 작업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음의 줄 길이 비율이 저마다 다른 순정률을 쓰는 국악 악기의 소리들을, 음의 줄 길이 비율이 균일한 평균율 시스템으로 되어있는 컴퓨터 음악프로그램에 제대로 입력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으로 보입니다.(<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다시 생각해보는 우리의 소원’ 참조)

예를 들어 한 옥타브를 똑같은 12개의 반음들로 나눈 서양의 12평균율로 되어있는 피아노 흰 건반 검은 건반 소리들의 음높이, 음량, 음길이의 일정함을, 한 옥타브를 똑같지 않은 간격의 음들로 나눈 국악의 순정률로 되어 있는 해금이나 대금 소리로 똑같이 맞춰내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또 시김새(보통 소리의 앞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장식음이나 짧은 길이의 잔가락들)나 농현(국악에서 현악기를 연주할 때 줄을 짚고 흔들어서 여러 가지 꾸밈음을 내는 기법), 요성(음을 떨어주는 연주기법) 등 전통악기가 가진 음색과 고유한 표현 방법을 샘플로 만드는 일도 상당히 어렵습니다.(전주대학교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 김병오, 이정석의 논문 ‘컨탁트 기반의 한국 전통 가상 악기 개발’ 참조)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 과정을 거친 국악음원샘플 작업은 이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위의 전주대학교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에서 ‘컨탁트’라는 음악 샘플링 프로그램과 음원 보정 프로그램인 멜로다인, 오토튠, 웨이브스튠을 이용하여 해금, 대금의 음원샘플을 데이터화하였습니다. 국악 가상악기(VSTi) ‘삼현육각 Beta’가 그 작업의 결실입니다.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으로 불러들여 피아노처럼 생긴 마스터 키보드를 누르면 건반에 해당되는 해금과 대금 소리들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죠. 상당한 수준의 음질과 가용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들이 많습니다.

대금 소리를 한음 한음씩 녹음하는 장면.
대금 소리를 한음 한음씩 녹음하는 장면.

한음 한음 녹음된 대금 소리들을 샘플로 데이터화 하여 컴퓨터 시퀀서로 불러낸 장면.
한음 한음 녹음된 대금 소리들을 샘플로 데이터화 하여 컴퓨터 시퀀서로 불러낸 장면.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과 연결된 마스터 키보드로 국악 가상악기 대금 소리를 내는 장면.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He8WIeXNtI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과 연결된 마스터 키보드로 국악 가상악기 대금 소리를 내는 장면.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He8WIeXNtI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이돈웅 교수(예술과학센터 센터장)팀이 국악 고유 선율에 중심을 두어 만든 스마트폰용 국악 애플리케이션인 ‘국악(Gugak)‘도 주목을 끕니다. 이 ’국악‘ 앱은 이돈웅 교수가 한양대 음대 재직시절 개발했던 국악 가상악기인 ’OX VSTi‘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이 ‘국악’ 앱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장구, 태평소 등 모두 21가지 국악 악기 앱들을 따로따로 다운받아 별도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국악계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의 연주를 샘플로 받아 데이터화했기 때문에 국악기 특유의 섬세한 농현, 요성, 시김새 등의 표현도 가능합니다. 센터는 앞으로 이 ‘국악’ 앱의 음원들을 더 개선하여 디지털 피아노 및 신디사이저 등에 탑재해 더 다양한 국악기 연주를 가능하게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악’ 앱 중 편경.
‘국악’ 앱 중 편경.

‘국악’앱 중 해금.
‘국악’앱 중 해금.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국악(Gugak)‘ 앱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국악(Gugak)‘ 앱들.

이러한 국악 음원샘플 데이터화 작업은 또 다른 방향에서도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부터 전통악기 개량 사업을 진행해 온 북한과의 교류를 통한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북한은 전통 악기들을 한 옥타브를 똑같은 12개의 반음으로 나눈 서양의 12평균율에 맞게 개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화음과 조옮김이 쉬워져 피아노와 기타 같은 서양악기들과의 협연도 수월해졌죠. 4줄 해금, 21현 가야금, 35현 옥류금, 어은금 같이 개량되거나 새로 만든 악기들의 새로운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구요.

북한 개량 국악악기 35현 옥류금.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 개량 국악악기 35현 옥류금. 한겨레 자료사진

무엇보다 전통 악기 소리들을 일반적 컴퓨터 가상악기들의 음율체계인 평균율에 맞추어 개량했기 때문에 음원을 샘플로 데이터화하여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기에 좋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국악기 고유의 음색이 옅어지게 됐다는 단점도 있지만, 악기가 발달해온 역사과정을 통해 볼 때 그렇게 커다란 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양악기들 중에서 지금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피아노만 하더라도 하프시코드, 스피넷, 6개의 페달을 가진 스퀘어 피아노 등 이전 악기들의 개량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죠. 게다가 피아노의 모태가 된 악기들도 보존 차원에서 여전히 남아 소리의 다양성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구요. 그렇게 다양성을 위해, 다양성의 교류 차원에서라도 북한에서 새롭게 개량한 국악기의 새로운 소리들을 음악 시퀀서로 불러 쓰도록 하는 것은 한번 해볼 만한 작업인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계승되고 있는 전통악기들은 고유의 음색과 톡특한 소리미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소중하게 샘플로 데이터화하여 누구나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으로 불러 사용하게 하는 것도 우리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연이나 세션 활동 등을 하는 국악기 연주인들에 대한 충분한 보호정책이 함께 진행된다면, 국악을 세계에 널리 알려 국악수요를 창출시키고 그에 따라 국악인들의 활동범위도 크게 넓혀갈 단초가 되리라는 판단이 드는 것이죠

국악음원 샘플 데이터화 작업을 통해 국악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북한과의 음악교류를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러한 노력들이 화해의 마중물이 되어 남북간의 더 큰 교류로 이어지는 길도 마련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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